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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잇는 작은 도구, 북마크의 역사와 시대별 디자인 변화

by 핵심정보박스 2025. 7. 18.

북마크 관련 사진

북마크, 혹은 책갈피는 단순히 페이지를 표시하는 도구를 넘어, 독서 문화의 일면을 반영해 온 존재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북마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은 종이와 인쇄술, 디자인 트렌드, 그리고 독서 방식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온 문명의 흔적이다. 본 글에서는 북마크의 기원과 시대별 기능 변화, 그리고 예술성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루는 현대 북마크 디자인까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책갈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 북마크의 기원과 초기 형태

우리는 흔히 책을 읽다 멈춘 페이지에 북마크를 끼워두곤 한다. 이 소소한 행위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 기원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조차 드물다. 그러나 북마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것은 책과 거의 동시대에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북마크는 서기 6세기 이집트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고대 콥트(Coptic) 제본본**과 함께 출토되었다. 당시 북마크는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책의 제본 부분에 묶여 있는 끈 형태였다. 이 초기 형태의 북마크는 사용자의 독서 진행 상태를 표시하고, 반복적 독서가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성경과 같은 종교 서적을 중심으로 북마크가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으로는 천이나 끈, 혹은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수도원에서 필사본을 읽는 수도사들은 북마크를 활용해 특정 구절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시기에는 북마크가 책에 고정된 ‘내장형’ 형태였으며, 이로 인해 책을 닫았다 열어도 북마크가 분실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책이 대중화되면서 북마크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부터는 독립적인 종이 형태의 북마크가 등장하였으며, 이는 상류층과 귀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식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는 북마크가 섬세한 자수, 리본, 레이스 등으로 장식되며, 하나의 ‘선물 아이템’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이처럼 북마크는 단순한 도구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으며, 그 형태와 재료, 기능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해 왔다. 이러한 흐름은 현대의 북마크에까지 이어지며,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닌 디자인 오브제로서의 위상을 형성하게 된다.

 

산업화 이후 북마크의 대중화와 디자인적 확장

19세기 산업혁명은 출판과 독서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쇄 기술의 발달과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책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이와 함께 북마크 역시 점차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책과 함께 북마크가 부록처럼 제공되기도 했으며, 상업적 광고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예컨대 약국, 담배 회사, 문방구 등에서는 자사 브랜드를 인쇄한 북마크를 무료로 배포하며 마케팅 도구로 삼았다. 이 시기의 북마크 디자인은 다양성과 창의성 면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보였다. 리넨 천, 엠보싱 처리된 종이, 심지어 얇은 금속을 사용한 북마크까지 등장했으며, 문학 인용구나 작가의 초상화가 인쇄되기도 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플라스틱 소재가 도입되며, 보다 경쾌하고 독특한 형태의 북마크가 등장했다. 책갈피는 점차 기능적인 ‘책 표시 도구’를 넘어, 독자의 개성을 반영하는 **독서 액세서리**로 발전해 나갔다. 한편 디자인 면에서는 ‘책을 해치지 않고, 독서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울 것’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클립형, 자석 부착형, 끈 타입, 접이식 등 여러 형태가 시도되었고, 이는 현대 북마크 디자인의 전신이 되었다. 21세기 들어서는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도 북마크는 여전히 유효한 독서 도구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전자책의 경우 북마크 기능이 소프트웨어 내장형으로 구현되었지만, 종이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은 여전히 북마크를 즐겨 사용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북마크가 소장 아이템 또는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많아, 수공예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참여한 한정판 북마크가 꾸준히 수요를 얻고 있다. 또한 북마크는 **개인적인 독서 취향과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는 북마크 하나가 특정 시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감성적 매개체가 되며, 책을 읽었던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북마크는 디자인과 기능, 감정의 층위를 동시에 아우르는 독특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책을 넘기고, 시간을 넘긴다 — 북마크의 의미와 미래

북마크는 그저 책 속 한 페이지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독서라는 행위의 연속성을 보장해 주는 장치이며, **책과 독자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온 조용한 동반자다. 고대 필사본에서부터 현대의 일러스트 북마크까지, 그 형태는 변화해 왔지만 본질적인 기능은 여전하다. 즉,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기록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메모리 장치인 것이다. 더 나아가 북마크는 책을 대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미학적 표현이기도 하다. 단순한 메모지, 영수증, 지폐 등을 책갈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성스럽게 선택한 북마크를 사용하는 이는 책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표현한다. 또한 선물용 북마크는 독서 취향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로 여겨지며, 독서문화 속에서 하나의 ‘관계 매개체’로도 기능한다. 현대의 북마크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아트 마켓이나 북페어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북마크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소개되며, 독자들은 이를 수집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다. 디지털 시대라 해도 종이책과 북마크의 조합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독서 습관이 깊은 이들에게는 그 어떤 디지털 기능보다 더 의미 있는 도구로 인식된다. 앞으로도 북마크는 단지 책의 위치를 알려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독서의 시간을 기억하게 하고, 책이라는 매체의 감성을 물리적으로 이어주는 조형물이 될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끼워두었던 북마크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단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감정을 함께 되짚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북마크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이 독서의 세계를 잇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